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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에 온 것 자체가 내 시를 완전히 바꿔”
  • 조도현 기자
  • 등록 2024-05-26 11:50:46
  • 수정 2024-05-27 08:5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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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도현, 네 번째 시집까지 대부분 익산 이야기
  • 윤흥길, 박범신, 양귀자 등 초청 문학산책 제안

“아무것도 가진 거 없이, 낯선 도시에 도착해, 시를 쓰는 비밀을 간직해 살기 시작하던 나의 스무 살에게 이 책을 건넨다”


안도현 작가가(단국대 문예창작과 교수)가 등단 40주년을 기념해 출간한 책 <고백 – 안도현의 문장들> 앞머리에 쓴 글이다. 그는 스무 살이던 1980년에 원광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했다.


지난 23일(목) 저녁, 익산 중앙동 ‘기찻길옆골목책방’에서 <안도현 작가와의 대화 – 나의 스무 살>에게가 열렸다. 스무살 무렵 국어국문학과 입학했던 청년 안도현은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큰 꿈을 품었을까, 또 그가 한국 문단을 대표하는 시인이 되기까지 익산과 원광대학교에서 보낸 시간들은 그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지금까지 어디서도 들어본 적 없는 이야기들을 들어볼 수 있던 자리였다. 


이날 안도현 작가는 “익산에 온 것 자체가 내 시를 완전히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고 했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이른바 ‘김춘수적’인 시 쓰기를 배웠다. 언어를 갈고 닦는 것, 절제, 이런 것들이 중요하다고 배웠다. 그런데 익산에 오니 알게 모르게 판소리 가락 같은 분위기들이 스며있는 게 딱 보이더라. 그래서 그걸 배우려고 노력을 하고 많이 훔쳤다. 경상도식 방식과 전라도식 방식을 결합해봐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습작을 했다.”

그가 다룬 소재들만 봐도 변화는 확연했다. 그는 대학교 1학년 때 <낙동강>이라는 시로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된 데 이어, 4학년 때 <서울로 가는 전봉준>이라는 시로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연거푸 당선되었는데, ‘낙동강’은 그의 고향 예천을 지나는 강이고, ‘전봉준’은 전북에서 봉기한 동학농민혁명의 지도자였다. 그는 “80학번으로서 간접적이지만 5.18광주민주화운동을 겪었던 경험이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80년대에 서울로 가지 않고 이 전라도라는 땅의 이리라는 곳에 살았던 게 너무너무 잘 된 일이었단 생각을 많이 했다. 내가 쓰는 시가 그냥 골방에 쳐박혀서 내 이야기만 쓰는 데 그쳐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또 그때 사귀던 여학생이 우리 학교 국사교육과를 다녔는데, 그 친구한테 책을 많이 빌려봤다. <서울로 가는 전봉준>이라는 시도 그렇게 나올 수 있었다.”


그는 1994년 무렵까지 익산에서 14년을 살았다. 결혼도 익산 제일예식장에서 하고 두 아이도 모두 이곳에서 낳았다. 그는 “익산 살 때는 진짜로 익산이 고향이라고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그 시절 시내버스를 타고 익산터미널 옆 고가도로를 타고 넘어가다 창밖을 내다보면 경상도에서는 한 번도 보지 못한 풍경이 보였다. 들판에 있는 불빛들이 일렬로 보이는 게 아니고 둥글게 보였는데, 그때 그 경험이 무지 신비로웠다. 마치 지구 전체가 다 보이는 것 같았다. 그때 본 풍경을 동학농민군이 돌렸던 사발통문의 동그란 형상에 빗대어 시를 쓴 적도 있다. 첫 시집 <서울로 가는 전봉준>이 1985년에 나왔고 네 번째 시집 <외롭고 높고 쓸쓸한>이 1994년에 나왔는데, 첫 시집부터 네 번째 시집까지는 대부분 익산 이야기가 담겼다”


그는 이날도 일찍 익산역에 내려 한참을 중앙동 곳곳을 돌아다녀보니 할 말이 정말 많더라면서, 최근 대하소설 <문신>을 완간한 윤흥길 작가를 비롯해 박범신, 양귀자 그리고 정희성 작가 등 원광대 국어국문학과를 나왔거나 익산과 인연이 있는 작가들을 불러 어릴 적 살았던 곳, 작품의 배경이 되는 곳들을 함께 다니면서 그 시절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는 작업을 해볼 것을 제안했다. 그는 “그런 것들을 쌓아두면 나중에 큰돈 들여 꼭 무슨 문학관 같은 걸 짓지 않더라도 중요한 자료들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원광대 국어교육과를 다니며 안 작가와 대학시절부터 인연을 맺어온 신귀백 익산근대문화연구소 소장도 이날 “안도현 작가는 익산의 중요한 자산”이라면서 안도현 작가의 시에 등장하는 익산역과 옛 익산역 굴다리 그리고 익산고도리석조여래입상 등에 작가와 작품을 소개하는 안내판을 붙일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이날 행사를 윤찬영 기획한 기찻길옆골목책방 대표는 “최근 김민기 학전 대표가 새롭게 주목을 받았는데, 정작 그가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고, 또 1980년 무렵 어려움에 처한 그를 따뜻하게 품어줬던 고향인 익산엔 아무런 할 이야기가 남아있지 않은 현실이 안타까웠다”면서 “지금이라도 익산과 인연이 있는 자랑스러운 이들을 자주 불러 다시금 관계를 맺고 또 기록하는 작업들을 꾸준히 해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했다. 그는 앞으로도 여러 문인들을 불러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익산 이야기’를 들어볼 계획이다‘라고 했다.


한편, 이날 행사는 익산시의 ‘2024년 지역서점 독서문화 프로그램’ 지원으로 마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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